저는 이따금씩 알라딘에서 중고 서적을 뒤적이는 걸 좋아합니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알라딘 윈도쇼핑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 책이 추천 도서 목록으로 뜨더라고요. 일단 표지가 마음에 들었고 딱 봐도 이건 만화겠거니 싶었습니다. 저는 텍스트 알레르기가 있어서 글씨가 빼곡한 책은 잘 못 읽겠더라고요. 오히려 이런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 딱입니다. 그런 제가 블로그를 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지만요.
작가님 성함은 구정인, 책 제목은 「비밀을 말할 시간」 입니다. 주인공 은서는 여자고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이웃 남성이 성추행을 합니다. 여기까지만 딱 알아도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시죠? 그렇습니다. 이 책은 여성 미성년자 성폭행 및 성추행 피해자의 경험담입니다. 왜 바로 피해 사실을 말을 못 했는지, 왜 이제야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철저히 피해자인 은서 입장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저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렇게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좋아합니다. 많은 한국 남성들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여성 계정에 찝쩝대면서 성희롱을 일삼고 있고 오프라인 어디에서는 버젓이 성추행 및 성희롱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관심이 없으면 절대로 몰라요. 구정인 작가님은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수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알게 모르게 남자에 의해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하고 있음을 알리는 목적에서 책을 집필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또 이렇게 이야기하면 "남자도 여자한테 성추행 당한다!" 하고 화내는 남자들이 반드시 있을겁니다. 뭐 그렇게 하나라도 지기 싫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압도적으로 남성 가해자가 많은 건 사실이잖습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요. 인정하는 쿨한 사람이 되어야지 속 좁아서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그런 작은 그릇으로는 이 어찌 급격히 변하는 세상에 적응을 하겠습니까? 부디 이 글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께서 만약 남성이라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은서는 남성의 성추행에 의한 피해자이면서도 혼자 말도 못하고 꾹꾹 숨겨왔다가 9년 만에 드디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힙니다. 다행히 은서 어머니는 딸의 이런 용기 있는 솔직함을 따뜻하게 안아주죠. 나름 해피 엔딩이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현실 이야기니까 참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남성들은 또 이런 책을 보면 읽어보지도 않고 허구라는 식으로 비아냥댑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일 취급하는 건 참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어째서 허구 영화는 그렇게 잘 시청하는 건지...? 결국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거겠죠.
비밀을 말할 시간은 성인이 읽기에도 좋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분들께서 읽기에 매우 좋은 도서라고 생각합니다. 남성이 읽기에도 좋아요. 여성의 삶 중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며 스스로 좀 더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혹시 내 또래 여자애 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본인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가장 좋은 건 당연히 어른에게 알리는 건데... 하~ 근데 또 어떤 어른이냐에 따라 결과가 확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한편으론 걱정입니다.
아시죠? 디씨인사이트라는 남초커뮤니티에 있는 우울증 갤러리 인가요? 거기는 진짜 성범죄남성들의 집단 서식지입니다. 우울증 및 자살을 생각하는 미성년 여자애들을 꼬드겨서 성범죄를 일삼습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저 같은 남성들은 피해자가 될 확률이 극히 낮죠. 지금은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아닌, 우리 남성들이 성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한 적극적인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그지 같은 어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이런 성범죄 문제에서 많은 남성들이 가장 많이 2차 가해하는 대표적 내용이 이런 거죠.
"왜 피해 사실을 바로 말하지 않았나?"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비밀을 말할 시간에 아주 정확하게 나와있으니 꼭 읽어보시기 바라겠어요. 근데 저런 질문하는 사람들은 꼭 답을 줘도 안 받아들임. 그냥 기분 나빠서 지껄이는 말일 확률이 매우 높죠. 제 블로그에는 미성년자분들도 몇 분 계시는 걸로 아는데 만약 남성분이라면 웬만하면 저런 문제 많은 커뮤니티에서의 활동은 하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친구는 닮는다는 말이 있죠? 안 좋은 건 가장 먼저 머릿속에 스며들어요. 제 말을 꼭 명심해 주시기 바라요.
비밀을 말할 시간은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당 중 극히 일부분만을 다룬 내용입니다. 만화 형태여서 읽는데 순삭입니다. 딸을 가진 보호자 입장에서 상상하면서 읽어볼 수도 있고, 비록 자신이 남성이지만 만약 여성이었고 이런 피해를 받았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에 대해서도 역지사지로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내용의 책이라고 확신해요. 아직 못 읽어보셨다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