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효자손 취미생활

가족 단톡방이 있습니다. 어머니, 저, 남동생 이렇게 세 식구가 있는 방이죠. 어느날 남동생이 느닷없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현관문에 말벌집 있는데요? 어떻게하죠?"

 

으잉? 현관문에 말벌집이 있다니?! 하긴... 저는 모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아싸인데다 로나코씨 때문에 집콕모드를 계속 이어가고 있으니 현관을 들락날락할 일은 택배박스 가지고 들어올때 말고는 거의 없으니까요. 동생은 직장인이기에 최소 하루 한 번은 들락날락 합니다. 이 사실을 접한 어머니께서도 말벌을 목격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심심했던 저는 바로 현관문 주변을 수색했고 아주 쉽게 이런 형태의 말벌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TIP
 
 

경고! 리얼한 사진들이 나옵니다. 애벌레도 나옵니다. 거미도 나옵니다. 절지동물이나 곤충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각오를 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뭐...

음....?! 제가 알기로는 말벌집은 그...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뭔가 바삭(?)한 재질의 집을 짓는걸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건 흙으로 만들어진 집입니다. 만져보니까 엄청 단단히 달라붙어 있더군요. 그리고 구멍이 하나입니다. 보통 벌집이라 하면 여러개의 구멍이 모여있는 형태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단톡방에 다시 물어봅니다.

 

나 : "이거 말벌집 맞아요? 혹시 말벌 왔다 갔다 하는거 보셨어요?"

어머니 : "오늘 아침에도 두 마리가 왔다 갔다 하던 것 같았어."

나 : "생김새가 좀 어땠어요?"

어머니 : "엄청 허리가 가늘던데?"

 

허리가 가늘다?! 그렇다면 이것은 다른 형태의 벌집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구글에 「흙으로 집짓는 말벌」 이라고 검색해서 조사해봅니다.

 

출처 : [어린이과학동아] http://ikids.dongascience.com/EarthMonthly/view/32

조사 결과 이 녀석의 집이라는걸 알아냈습니다. 저 녀석의 이름은 호리병벌! 흙으로 집을 짓는다는군요. 엄청 견고하게요. 집 모양이 마치 호리병같다는 이유로 이름이 호리병벌이라네요. (정말 대충 짓는 듯...) 구글에서 호리병벌집이라고 검색하면 정말 호리병과 쏙 닮은 집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집 현관에 있는 호리병벌집은 뭔가 호리병 형태라고 보기엔 좀 어색합니다. 집을 처음 짓는 녀석인가 싶습니다. 구멍이 아래로 향해있다면 호리병 형태임은 분명합니다.

 

어쨌든 집에 호리병벌이 있다면 위험하기에 119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근데 규모가 너무 작아서 이걸로 119를 소환하기에는 세금 낭비에 인력 낭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정작 필요할 때 출동할 119 인력들이 없으면 곤란하니까요. 그래서 119에 전화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119 : "119 상황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 : "안녕하세요. 저희집 현관 위에 말벌집이 있어요. 근데 규모가 작아요. 이제 막 짓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냥 제가 제거해도 괜찮을까요?"

119 : "아 그러시군요. 혹시 벌집이 집 안에 있나요? 아니면 밖에 있나요?"

나 : "밖에 있습니다."

119 : "알겠습니다. 규모가 작다면 말벌이 없을 때 직접 제거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단 안전하게 복장 착용 후 제거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이제 상담도 받았겠다, 벌도 외출하고 없겠다! 완벽한 상황입니다. 혹시 안쪽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에프킬러를 잔뜩 뿌렸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본격적으로 호리병벌집 제거 작업을 게시합니다.

 

생각보다 너무 튼튼했던 호리병벌집

망치와 송곳을 사용해서 열심히 부쉈습니다. 부수는 동안 좀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이러면 저희 가족이 위험해지니까요. 집 앞에 뜰도 있는데 왜 거기에 안 짓고... 하필 우리집 현관에 지을게 뭐람?! 아무튼 열심히 도구를 사용해 제거 작업을 진행합니다. 생각보다 너무 견고했습니다.

 

근데 부수자마자 왠 거미 사체들이 우수수 아래로 쏟아져 떨어집니다. 혹시 거미집인가 싶을 정도로요. 알고보니 호리병벌의 주식 중 하나가 바로 이 거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가차없는 녀석들입니다. 사냥을 정말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즉 방금 부순 곳은 먹이창고였던 모양입니다. 아주 그냥 차곡차곡 많이도 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성체가 되어가는 녀석의 사체도 보입니다. 죽은지 꽤 된 것 같았습니다. 바삭했거든요.

 

흙으로 덮여있던곳에는 호리병벌 애벌레가 들어있었습니다. 코로나때문에 외출을 금하고 있던 이 시기에 녀석들은 열심히 활동했던 것입니다. 아주 알차게도 방을 잘 만들어 두었더군요.

 

떨어져나간 집에도 애벌레가 있습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사망했습니다. 애프킬러의 힘인듯 합니다.

 

애벌레집안에는 이런 녀석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왠지 낚시 미끼로 활용하면 정말 입질 잘 받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집을 제거하고 바닥에 널부러진 흙과 녀석들을 잘 쓸어담아 집 앞 뜰에 뿌렸습니다. 현관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왜 녀석은 우리집 현관에 집을 지었던 걸까요?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었을텐데... 이번에는 판단 미스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동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곤충도 좋아합니다. 생명체들은 다 좋아합니다.

 

TMI지만 바퀴벌레도 전혀 무섭지 않고요. 심지어 손으로 잡기도 합니다. 곱등이도 좋아합니다. 손에 포개고 더듬이 두개가 띄용하고 나와있는걸 좋아라합니다. 손에서 발버둥치는 그 느낌을 즐긴다고 해야할까요? 이 정도로 좋아하는데 벌이 현관에서 살고 있으면 저희 가족도, 이웃도 위험하기에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호리병벌들이 부디 앞으로는 사람 인적이 없는 곳에 집을 지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끝.

 

추가내용 (2022.8.24)

가을이 되면 낚시나 다시 가볼까 싶어서 옥상에 고이 모셔둔 낚시 장비를 점검해보려고 올라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눈에 포착됩니다.

 

처음엔 누가 낚시 가방 위에 돌을 올려놨나 싶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미친짓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돌을 낚시 가방에 올려놓을 사람은 잘 없으니까요. 궁금해서 가까이 가봤습니다.

 

".....?!"

 

.... 아니 호리병말벌씨, 대체 왜...?! 많고 많은 이 드넓은 동네에 왜 하필! 그것도! 낚시 가방 위에! 내집마련을 하시는 겁니까요?! 진짜 알 수가 없네요. 이 건물이 호리병말벌을 모으는 오라를 뿜어내는걸까요? 뭔가 생존하기 좋은 조건이 있는 걸까요? 참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또 미안한 마음을 머금고 녀석들의 집을 제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호리병말벌아, 이제 제발 다른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련?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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