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효자손 취미생활

평화로운 어느 한적한 날이었습니다. 정확히는 2023년 12월 6일 오후 4시 쯤이었습니다. 당근으로부터 알림이 떴습니다. 뭔가 중고거래에 대한 결과가 나왔나 싶었습니다. 최근에 끌올을 몇 개 한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해봤는데 뭔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이런 황당한 메세지가...?

이런 내용의 톡이 도착한 것입니다. 위의 이미지가 깨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을때를 대비해 해당 텍스트를 한번 더 아래에 작성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ㅇㅇ전파관리소 민원담당 ㅇㅇㅇ 입니다. 당근마켓에서 판매하는 ㅇㅇㅇ 제품은 해외제품으로 국내 전파법에 따른 KC인증을 받지 아니하였거나, 개인목적으로 구매 후 1년 이내에 재판매 하고 있다는 민원이 접수되었으니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알아봤습니다. 전화번호 조회도 해보고 실제 이런 사례로 인한 사기 수법이 있는지 구글링도 해보고요. 근데 실제로 이런 사례에 대한 경험담이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대체 뭔 일이란 말인가요? 전파법이라니?! 처음 들었습니다. 일단은 침착하게 마음을 먹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당근마켓 메세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ㅇㅇㅇ 입니다."

"아네. 혹시 당근마켓에 ㅇㅇㅇ 제품 판매글을 올리신 거 맞으신가요?"

"아 네. 맞습니다."

"아 네. 저는 당근 톡을 드린 대전전파관리소에서 근무중인 담당자 ㅇㅇㅇ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해당 제품은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고 아직 구매한지 1년이 안 되신 거 같더라고요. 해서 이 내용의 판매글이 민원 신고가 되어서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어떤 개인 사업자로 판매업을 하시는건가요?"

"아니요. ㅠㅠ"

"아, 그럼 그냥 개인 판매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마 좀 당혹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해외직구 IT 제품들은 대부분 국내 KC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들이에요. 구매한지 1년 미만인 제품을 판매하게 되는 경우에 전파법 위반에 해당하거든요."

"아... 네... 처음 알았어요."

"선생님 뿐만 아니라 아마 아시는 분들은 거의 없으실거에요."

"네...."

"일단, 신고 접수는 되었기 때문에 저희도 이걸 처리를 해야 하거든요. 보통 초행인 경우에는 일종의 경고의 의미로 서류 몇 개 작성하시고 훈방 조치가 되실거에요. 혹시 내일 방문 가능하세요?"

"아, 네. 가능합니다."

"그럼 내일 오후 2시까지 대전 전파 관리소로 오셔서 진술서랑 몇 가지 서류를 좀 작성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오실 때 신분증이랑 도장도 챙겨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게시글에서 판매하려고 하셨던 제품도 좀 가지고 와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이메일로 양식을 보내드릴테니 한번 살펴보시고 예시의 내용대로 미리 진술서를 좀 작성하셔서 오시면 좋거든요?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한 순간에 범법자가 되다

일단 통화는 끝냈지만 이런 경험이 한 번도 없던터라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걱정해봤자 해결되는건 아무것도 없다는걸 잘 알기에 일단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이모티콘을 열심히 그렸습니다. 예전 성격 같았으면 하루종일 일손이 안 잡히고 상당히 불안에 떨었을텐데, 이제 뇌가 이런 쓸데없는 걱정까지 할 능력이 되지 않는지 생각보다 많이 단순해져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습니다.

 

모임을 끝내고 잽싸게 집에 가서 이메일로 받은 양식을 받아서 열어봤습니다. 파란색 글씨로 예시가 작성되어 있었기에 진술서 작성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진술거부권에 대한 파일도 있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시전할 수 있지만 불리하게 적용되고 어쩌구 저쩌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많이 들어봤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들리는 대시 중 하나잖아요? 이걸 딱 읽는 순간 범죄자의 냄새가 확 느껴졌습니다. 그제서야 법을 어겼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뇌를 치더군요. 하지만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 할 것으로 생각하고 아까도 이야기했듯 어차피 혼자 생각해봐야 해결되는건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걱정을 멈추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잠은 잘 오더라고요.

 

전파관리소 방문

다음 날 홈트레이닝을 마치고 준비물을 바리바리 챙겨서 대전 전파관리소로 향해 출발했습니다.

 

처음 방문해본 전파관리소

대전전파관리소는 KT 건물 근처에 있었습니다. 한국 전파관리소에서 하는 일을 알아보니 올바른 전파환경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법 전파같은 부적절한 혼신에 대한 감시와 탐지 근절을 목적으로 조사·단속을 하며 그 외 무선국 허가·폐지 신고, 적합성 평가 등을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입구에 있는 안내원의 안내를 받고 올라갔는데 입구에 한 분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자 바로 말을 걸어주십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ㅇㅇㅇ 선생님이세요?"

"어,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아유, 바쁘실텐데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원증을 꺼내들며) 저는 어제 통화 나눴던 ㅇㅇㅇ 담당자입니다. 그럼 바로 올라가실까요?"

"네."

 

아니 담당자님께서 너무 친절했습니다. 예상과 정 반대의 상황이어서 살짝 당황했을 정도로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었거든요.

 

"이 범법자 새끼! 따라와! 전파법을 어긴 사악한 녀석아! 떼이잉~ 쯔쯧!"

 

이런 느낌으로 대접받을 줄 알았어요. (크큭...) 웃어주시면서 너무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니 다행이었습니다. 전파관리소는 꽤 컸고 조용했습니다. 저는 상담실 비슷한 곳에 들어가서 담당자님과의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받은 서류는 방송통신기자재등의 적합성평가 제도 안내를 담은 용지였습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요즘 해외직구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으시잖아요? 근데 전파법에 대해서 알고 계신 분들은 거의 없죠. 그래서 이런 민원 신고가 많이 접수됩니다. 해외직구 시 이런걸 고지해야 하는데 알려주지는 않고 법만 만들어져서 최근에 한번 전파법이 개정 되었어요. 너무 빡쎄다는 의견이 많았죠. 그래서 상습적으로 판매 목적으로 직구하시는 분들을 제외하고 선생님처럼 그냥 개인이 쓰려고 해외직구했다가 다시 판매하는 경우에는 1회에 한해 유예를 드리는 편입니다."

"네에..."

 

불법방송통신기자재를 판매하는 경우에는 다음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전파법 제 84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전파법 제 86조)

-3백만원 이하의 과태료 (전파법 제 90조)

 

전파법이란 녀석... 어마무시한 놈이었습니다. 진술서는 이미 양식 내용에 맞게 맞춰 작성했지만 한번 더 이곳에서 수기로 작성을 더 해야만 했습니다. 신분증도 복사하는데 사용되었고 도장은 각종 서류에 대한 인을 찍을 때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판매하려했던 해외직구 상품은 사진을 찍는 용도로 사용되더라고요. 저는 이게 환수조치되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습니다. 대략 시간은 35분 정도 걸렸습니다.

 

"오늘 너무 고생많으셨습니다. 선생님. 많이 당황스러우셨죠?"

"아.. 네. 처음 겪는 일이라서 좀... 하하. 당황했네요."

"이해합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세요. 그래서 1회에 한해 개인인 경우에는 이렇게 서류만 작성하고 훈방 조치를 합니다. 근데 두 번째에 또 민원이 들어오면 그때는 검찰로 넘어가요.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로 1년 미만의 해외직구 상품은 거래글을 작성 안 하시는걸 추천해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전파법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서류를 모두 작성했고 간단한 교육을 받고 훈방 조치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예가 5년이기에 절대로 이 기간 동안에는 동일한 문제로 재접수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가장 좋은건 그냥 아예 판매를 안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의문인 부분

어유... 이게 다 뭐시당가?
IT 제품 대부분이 해당된다.

이 사실을 모임 멤버분들에게 이야기했고 당연히(?) 놀라워 하셨습니다. 아무도 전파법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죠. 제 경험담을 듣고 다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1년 이후에 해외직구 상품을 판매하는건 괜찮은건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이번 상담 때 담당자님께 질문을 드렸고 받은 답변 내용은 이러하였습니다.

 

이건 저렴하게 들여오는 직구 상품을 개인이 대량 수입해 되파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또한 1인당 1제품만 판매가 가능합니다. 이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만약 이 제한이 없다면 대량구매한 직구 상품을 대량 판매가 가능해집니다. 1년 이후에요. 이 또한 개인 사업자의 성격을 띄는 불법 판매이기에 이런 제한이 있는 것입니다. 충분히 납득되는 사항입니다.

 

근데 여러분들도 눈치 채셨는지요? 지금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면 전파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분명 전파관리소에서 하는 일은 불법 전파에 대한 감시와 제품 적합성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해외직구 상품이 1년 이전에는 불법 전파를 가진 제품이 되고 1년 이후에는 갑자기 괜찮은 전파를 사용하는 제품이 될까요? 1년 이상인 해외직구 상품은 판매가 가능하다고 하는 조항이 참 아이러니한 일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파법은 표면상 전파 어쩌구 저쩌구를 언급할 뿐, 사실은 세금이 포함되지 않은 제품이 국내에 잔뜩 유통되면 국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이것을 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이라고 말입니다. 국내에서 사업하는 사업체에도 악영향을 미칠수도 있을겁니다. 개인 사업자를 내고 잔뜩 해외직구 상품을 들여와 싸게 유통시키면 확실히 국내에서 정식 사업하는 동일 직종 사업체는 치명적인 일일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좋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은 세금이 붙는데 개인이 구매하는 해외직구 상품은 그게 없으니 정부 입장에서는 좀 괘씸할수도 있는거죠.

 

마무리

아무튼! 이번 경험을 통해서 전파법이라는게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당연히 해외직구 상품을 악용할 목적도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일반 해외 직구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개인이 쓰려고 구매했다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중고로 판매를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근데 이걸 전파법이란는 명목으로 막는건 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따라서 전파법이 좀 더 개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개인이 사용하기 위해 해외에서 반입한 제품은 1인당 제품별 1대의 범위 내에서 중고 거래가 허용, 1인당 동일 모델명 2대 이상 중고 거래를 하는 경우는 불법

 

왜냐하면 국내 시장을 위협하는건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1대의 거래가 아닌, 그 이상으로 해외직구 상품을 대량으로 구매 후 국내에서 되팔렘하는 인간일테니까요. 이런 사람을 억제해야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본인이 쓰려고 해외직구하는건 동일 제품을 2개 이상 구매하는 일은 사실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전파법이 좀 개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멀쩡한 일반 시민들이 이 전파법 때문에 순식간에 범법자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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